서동진,신지현,안은미,양효실,임근준,장영규,현시원 지음 | 현실문화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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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춤은 무엇인가?
안은미의 안무와 댄스는 유별나고 독보적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현대무용 전문가들로부터 무용을 망친다는 지적을 익히 받아온 그녀의 춤은 실제로 한국 무용은 물론이고 서양 무용 어디에서도 그 기원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녀의 “춤의 무대가 서커스, 장터, 클럽, 관광버스 등이 겹쳐 보이는 착시를 유도하면서 예술 바깥의 현장들, 근대적 ‘장소들’을 소환”(양효실, 106쪽)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고급예술로 자리매김한 (서구적) 현대무용의 규범적 언어를 비틀고 그로부터 이탈하는 안은미의 이 안무법이 자율적 예술로 자리매김한 현대무용의 존재론적 근거를 위협하는 유별난 것으로 보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안은미의 안무와 춤을 단지 유별나고 독보적인 작업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녀의 예술적 실천이 제기하고 있는 궁극적 지향점과 전복적 의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그녀의 안무는 현대예술의 가장 중요한 동시대적 의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 예술계, 무용계는 무용/반(反)무용, 고급예술/저급예술, 서구/비서구, 중심/주변, 전통/현대, 정상/비정상, 규범/쾌락, 남성/여성 등 무수한 이분법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다. 안은미의 안무와 춤은 이분법적으로 작동하는 이 무수한 틀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현대무용 혹은 현대예술 내부를 겨냥하는 메타-무용, 메타-안무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안은미의 춤이 갖는 진정한 효력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안은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춤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쳐둔 적이 없었고, 그녀의 모든 춤과 안무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두철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율적 제도예술로서의 현대무용이 결코 답해줄 수 없는 질문임도 알았다. 그녀의 안무와 춤은 정확히 “오늘날 몸이 처한 정황을 배경으로 발휘”(서동진, 66쪽)된다. “춤바람이라는 검열을 통해 억압되거나 제거되어야 했던 몸짓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안은미의 기억술”은 “현재의 몸 안에 퇴적된 역사적 힘들의 길항”(서동진, 79쪽)을 추동하면서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즉 안은미의 춤은 현대무용 혹은 현대예술이 의탁하고 있는 제도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겨냥해 춤을 통한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안은미의 독보적 안무법으로서의 ‘막춤’에 대한 이론적 대화
지난 30년 동안 안은미가 국내외에서 펼쳐온 행보와 궤적, 작품들이 지닌 의미에 비추어보면 그에 대한 연구는 너무도 일천하다. 『공간을 스코어링하다: 안은미의 댄스 아카이브』는 그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시도다. 다행히도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던 안은미는 작품들과 관련된 다양한 유형의 자료들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해왔다. 여러 평론가들이 그의 춤을 ‘인류학적 무용’이라고 명명했듯이, 그녀는 “연구자, 증언자, 번역가로서의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과”(양효실, 109쪽)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그녀와의 좌담 형식으로 꾸민 것도 그녀에 관한 아카이브의 층위를 다층적으로 지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평론가 임근준, 서동진, 양효실이 안은미의 작업에 대한 이론적 대화를 시도한다. 각각의 글은 안은미의 안무(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한 사례로 자리매김할 만큼 주목할 만한 의제들을 제시하면서 그 의의를 정치하게 풀어낸다. 안은미의 춤과 안무를 새로운 비평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유용한 참고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안무 노트, 의상 스케치를 배치해 안은미의 재료를 시각화하고 아카이빙한다. 세 번째 파트는 안은미의 ‘작품’을 중심에 둔 대담이고, 네 번째 파트는 연대기다.
안은미의 모든 춤 혹은 안무를 망라하기에는 지면상의 한계가 너무 크다. 이에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담 파트에서는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 21개를 선별한 뒤 연구자 현시원과 신지현이 선별된 작품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전기적 내용을 포함해 안무적, 미학적, 운동적, 수행적, 역사적 의미의 층위를 넘나들며, 진지하면서도 안은미 특유의 솔직함과 유쾌함을 한껏 담아낸다. 또 관련된 작품의 사진 자료와 동영상의 스틸컷을 함께 수록해 무대에서의 경험을 부분적으로나마 재현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안은미의 안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작곡가이자 밴드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장영규와의 대담을 담아 긴 호흡으로 진행된 협업의 진정한 의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안은미의 예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이 책을 통해 안은미의 30년 궤적과 더불어 미래를 조망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시아 현대무용가로서 서구의 신화/거장이 써놓은 역사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역사 ‘쓰기(choreography)’를 하는 안은미의 몸은 미래를 비추는 어떤 거울이 될 것인가.”(현시원, 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