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나는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세상은 크니까, 너무도 거대하니까.”
시인의 책상 서랍에 보관되었던 오래된 원고 뭉치……
첫 시집 이전의 시에서 위대한 시인의 첫걸음을 만나다!
2012년 2월 1일,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의 자택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로부터 9년이 지나, 쉼보르스카의 특별한 시선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선집이 특별한 이유는 시인의 생전에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초기작들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표제이자 시집의 첫번째에 놓인 ‘검은 노래’에 수록된 시편들이 그것이다.
1945년 3월 14일, 『폴란드 데일리』에 「단어를 찾아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쉼보르스카는 1949년경 등단 시집을 준비했으나 출간이 불발되었다. 자신의 가능성과 재능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시인이 출판을 철회했다는 설, 사회주의 정권의 검열 때문이라는 설,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요구하는 기준으로는 어차피 출판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 시인 스스로 포기했다는 설 등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1948년에 결혼한 당시의 남편이자 편집자인 브워데크가 편집을 맡기로 되어 있었던 이 미발간 시집의 원고는 이후 1952년에 출간된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 없는 병사의 키스」 한 편만이 유일하게 수록된 작품이었다. 쉼보르스카는 1954년에 출간한 두번째 시집 『나에게 던지는 질문』까지 당시 폴란드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문인과 마찬가지로 당에서 요구하는 정치 선동적인 내용의 시를 썼으나, 1956년 사회주의정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탈정치적인’ 문학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1957년에 출간한 세번째 시집 『예티를 향한 부름』을 기점으로 정제된 시어 속에 관조와 성찰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중견 시인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펼쳐가던 시인에게 당시에 이혼한 상태였던 전 남편 브워데크가 생일 선물을 보내온다. 1970년 7월 2일에 도착한 그 선물은 바로, 시인의 첫 시집이 될 뻔했던 초기작들을 모아 타이프라이터로 옮긴 뒤 집필 연도까지 기재한 가편집본이었다. 브워데크는 그다음 행보를 준비하며 응답을 기다리겠다는 편지를 함께 보냈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 원고는 오랫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시인의 책상 서랍에 보관되었다. 그중 「*** 한때 우리는 닥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극장 문을 나서며」 「검은 노래」 세 편이 2001년에 출간된 『쉼보르스카 자선 시집』에 수록되었으나, 이 원고 뭉치가 온전히 발견된 것은 2012년 쉼보르스카가 타계하고 난 뒤였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재단’의 이사장인 미하우 루시네크는 2014년, 이 원고를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등단 시집을 내기까지 신진 시절의 쉼보르스카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었고, 미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젊은 날에 관심을 보인 시적 모티브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2차 대전의 상흔이 시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