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 항로
2 동료들
3 비행기
4 비행기와 지구
5 오아시스
6 사막에서
7 사막 한복판에서
8 인간들
옮긴이의 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연보
상세이미지
저자 소개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1900-1944)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남서부 도시에서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 장 드 생텍쥐페리 백작이 갑자기 사망하자 어머니 마리 드 퐁스콜롱브를 따라 레망에 있는 숙모의 성채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맘껏 뛰놀며 모험을 즐겼던 경험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훗날 “늙는 것은 잘못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라고 술회했다. 음악가이자 화가였던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감수성에, 위험천만한 ‘비행’을 꿈꾸는 모험심까지 뿌리내린 것. 하지만 17세에 남동생 프랑수아가 자신의 팔에 안겨 사망하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21세에 마침내 공군에 입대해서 조종사가 되지만, 돌출 행동과 사고가 잦아서 ‘비행기를 부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때 약혼녀를 위해 과감히 조종사를 그만뒀지만, 파혼 후 민간항공사 라테코에르에 들어가 신항공노선 개척에 참여했고 그 고독한 비행들을 《남방우편기》(1929), 《야간비행》(1931)에 담았다. 스페인 내전 취재 특파원으로서의 단상까지 더해 《인간의 대지》(1939)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아라스 상공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벌집이 된 비행기로 간신히 귀환한 사건은 《전투 조종사》(1942)로 썼다. 잠시 미국으로 망명한 기간에는 프랑스에서 고통받고 있을 친구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어느 볼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어린 왕자》(1943)를 출간했다. 평소 “나는 지중해에서 열십자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그는, 1944년 7월 31일 8시 반 총 여섯 시간 치의 연료를 채우고 단독으로 마지막 정찰비행에 나섰고, 오후 2시 반 교신이 끊기며 코르시카 섬 인근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역자 : 김미정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고,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어린 왕자》 《알레나의 채소밭》 《부모 번아웃》 《경쾌한 사색자, 개》 《파리의 심리학 카페》 《라루스 청소년 미술사》 《기쁨》 《고양이가 사랑한 파리》 《미니멀리즘》 등을 번역했다.
목 차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체험을 쓴 에세이적인 소설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을 잇는 비행 이야기의 결정판 《인간의 대지》
아름답고 시적인 문체로 프랑스, 미국에서 동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등극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193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수상한 《인간의 대지》는 15년간 비행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생텍쥐페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특히 라테코에르 항공사에서 아프리카-남아메리카 항공로를 개척하기 위해 야간 비행에 나섰던 5년(1926~1930)의 모험을 중심으로, 이후에 러시아와 스페인 내전에 특파원으로 달려가 겪은 체험을 더해,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사색하여 한 편씩 썼던 글들을 소설로 재편집해 출간했다. 미국에서도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동시 출간되었는데,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였기에 인류의 연대를 말하고 인간의 존엄을 상기시킨 이 아름다운 소설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다.
(cf. 더스토리 초판본은 미국판 초판본의 표지와 본문 그림을 사용하였습니다.)
출판사 서평
“인간이 된다는 것은,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세계의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감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대지다.”
신참 조종사 생텍쥐페리가 우편행낭을 싣고 첫 비행에 나선다. 당시의 비행기는 쉽게 부서지고 엔진도 불안정하고 무선 통신도 수시로 끊겼기에, 야간 비행은 대단히 위험했다. 거기에 돌풍과 먹구름에 갇히기라도 하면 하늘과 땅이 뒤집혀버려서, 조종사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지상의 동료들이 보내는 불빛과 목소리를 간절히 찾아 헤맸다. 그는 안데스산맥에 추락했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동료 조종사 기요메와 메르모즈의 일화를 회상하며, 리비아사막에 추락해 갈증과 신기루에 죽어가던 자신이 귀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되짚어 본다. 또 사막에서 만난 노예 바르크가 자유인으로 해방되고 맨 처음 한 일, 전쟁 때문에 열차에 실려 추방되던 폴란드인 노동자 가족의 얼굴, 평범한 회계사로 살다가 직장동료의 전사를 듣고 군대에 들어와 나치 공습에 맞서 출격하던 마드리드 전선의 중사 등도 떠올린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세계와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인간을 품어주다가도 가혹하게 내모는 ‘지구’라는 대지는 어떤 곳인가, 현실이 이토록 비참하고 암담한데도 과연 인간은 존엄한 존재인가……. 결국 인간이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낄 때, 모든 인류의 아픔을 함께 걱정하고 울어주고 도와줄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답고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한다.”
책 속에서
나는 아르헨티나를 처음으로 야간 비행 하던 그날의 장면을, 별만 홀로 반짝이고 드문드문 초원에 불빛이 보이던 캄캄한 밤을 언제든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불빛 하나하나가 어둠의 대양 가운데 의식이라는 기적이 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 우리는 서로에게 가 닿으려고 애써야 한다. 들판 여기저기 타오르는 불빛 가운데 몇몇과 교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_‘서문’ 8쪽
나는 사람들이 나직이 주고받는 속내를 듣고 놀랐다. 그들의 이야기란 질병, 돈, 가정의 슬픈 고민거리들이었다. 그것들은 감옥의 빛바랜 벽들을 칠했고 이들은 그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운명의 얼굴이 내게 보였다. 여기 있는 나이 든 공무원, 나의 동료여, 당신은 일말의 책임도 없다. 어떤 것도 당신의 탈출을 돕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흰개미들이 하듯 모든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고 평화를 축조했다. 당신은 소시민의 안전함, 루틴들, 시골생활의 숨 막힐 듯한 의식 안에 공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바람과 진흙과 별들에 맞서 이 소박한 성벽을 올렸을 것이다. 당신은 거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미 인간의 조건조차 잊을 정도로 허다한 어려움을 겪었기에. 당신은 방랑자 별의 주민이 아니며, 대답 없는 질문들을 묻지 않는다. 당신은 툴루즈의 소시민인 것이다. _‘항로’ 26쪽
기요메의 위대함은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우편물에 대해, 희망을 품은 동료들에 대해 그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손에 쥐고 가늠해 본 것이다. 살아 있는 이들 안에, 새로이 세워질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서 거기 일조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라는 차원에서 사람의 운명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명확히 말하자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세계의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동료들이 이룬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돌을 하나 놓음으로써 세계를 건축하는 데 공헌함을 느끼는 것이다. _‘동료들’ 61쪽
다시 한 번 우리는 조난당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조난자라면 응당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에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실수로 이미 갈기갈기 찢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안데스에서 귀환한 기요메도 그가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갔노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인 것이다. “만일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면 나는 쓰러지고 말았을 야.” _‘사막 한복판에서’ 196쪽
미지의 조건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걸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 인간의 진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실은 결코 증명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토양에서 오렌지나무가 굳건히 뿌리내리고 과실을 맺는다면, 그 토양이 오렌지나무의 진실이다. 만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한 종교, 문화, 가치들과 활동 형태가 한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그의 내면에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위대한 영주를 해방시킨다면, 그것이 인간의 진실이다. 그렇다면 논리는? 그것은 삶을 해명하기 위해 얽힌 것을 풀어가는 작업인 것이다! […] 당신이 무엇보다도 찬양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토대를 둔 대지다. _‘인간들’ 221쪽
외부의 공동의 목표 안에서 형제들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쉰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같은 대열 안에서 하나로 묶이고 동일한 고지를 향할 때 동료가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처럼 모든 것이 안락한 시대에, 무슨 이유로 사막에서 마지막 식량을 나누면서도 우리가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느꼈겠는가? 사회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하라 사막에서 구조작업을 하며 크나큰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 즐거움은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_‘인간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