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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고려 관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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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고려 관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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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84946347
쪽수 : 432쪽
고명수  |  혜안  |  2019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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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몽골의 눈으로 고려 관계사를 조망하다! 고려와 몽골, 양국 관계에서 종주국 몽골은 어떠한 입장을 취했을까? 본서는 20년간 몽골.원나라 역사를 연구해 온 고명수 충남대 교수가 몽골-고려 관계사에 관해 그간 발표한 글들을 수정.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고명수 1976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 졸업.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 고려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한국외대 강사. 2019년 현재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주요논저|「쿠빌라이 정부의 南海정책과 해외무역의 번영: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관련하여」(<사총> 72, 2011), 「쿠빌라이 집권 초기 관리등용의 성격:漢人儒士 중용 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동국사학> 55, 2013), 「쿠빌라이 즉위 초 王文統의 개혁정치」(<역사학보> 240, 2018) 등. 접기
목 차
책머리에 서 론 1부 몽골의 흥기와 양국관계의 형성 1장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1. 머리말 2. 13세기 초 양국 외교관계의 성격 3. 형제맹약의 실체 4. 형제맹약에 관한 기억의 변용 5. 맺음말 2장 몽골의 遼東경략과 高麗-東眞 관계 1. 머리말 2. 동진의 흥기와 금-고려 연계 교섭 3. 몽골-동진-고려 화친 수립 4. 고려-동진 斷交와 著古與 피살 사건 5. 몽골의 동방진출과 고려-동진 동맹 시도 6. 맺음말 2부 쿠빌라이 시기 양국관계의 정립 1장 즉위 초 쿠빌라이의 고려정책 1. 머리말 2. 쿠빌라이 즉위 전 몽골의 고려정책 3. 쿠빌라이의 회유책 시행 배경 4. 책봉?조공 형식 채용의 의미 5. 맺음말 2장 1278년 쿠빌라이-충렬왕 만남의 의미 1. 머리말 2. 충렬왕의 외교적 ‘성과’와 위상 변화 3. 만남 후 고려의 ‘책무’와 六事 4. 호구조사, 징세 면제의 의미 5. 맺음말 3부 몽골의 세계관과 고려의 대몽외교 1장 몽골의 ‘복속’ 인식과 양국관계 1. 머리말 2.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복속’ 인식 3. ‘복속’ 인식의 괴리와 蒙麗전쟁 4. 쿠빌라이 시기 ‘복속’ 인식의 동요와 정착 5. 고려의 率先歸附 기억 생산과 활용 6. 맺음말 2장 몽골의 일본인식과 양국관계 1. 머리말 2.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일본인식 3. 고려의 지정학적 조건과 역할 4. 고려의 일본인식 공유와 대몽외교 5. 맺음말 4부 征東行省을 통해 본 양국관계의 성격 1장 정동행성의 置廢경위와 성격변화 1. 머리말 2. 至元24년(1287) 이전 置廢경위 3. 至元24년(1287) 이후 성격변화 4. <元史> 「百官志」 관련기사 검토 5. 맺음말 2장 정동행성 기능의 변천:시기구분을 겸하여 1. 머리말 2. 몽골의 정벌활동과 정동행성의 군사기능 3. 정동행성의 특수성 보전 4. 奇氏一家의 득세와 정동행성 기능?권한 강화 5. 몽골의 쇠퇴와 정동행성 기능 축소 6. 맺음말 5부 양국관계를 매개한 인물들 1장 고려 원종대 이장용의 외교활동 1. 머리말 2. 정치적 성장과 외교활동 개시 3. 元宗5년(1264) 몽골입조와 외교활동 4. 몽골의 助軍, 出陸 요구에 대응 5. 임연의 원종폐위 사건에 대한 처신 6. 맺음말 2장 고려 주재 다루가치의 置廢경위와 존재양태 1. 머리말 2. 다루가치를 둘러싼 외교갈등과 설치경위 3. 다루가치의 존재양태 4. 쿠빌라이의 다루가치 폐지와 그 요인 5. 맺음말 3장 충렬왕대 怯憐口 출신 관원 1. 머리말 2. 겁련구와 ?臣 3. 지위와 권세 4. 국왕과의 관계 5. 맺음말 결 론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13~14세기 몽골과 고려,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하게 밀착하고 몽골의 정치적 영향력이 고려에 직접 행사되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화적으로 교류를 행했던 한중관계의 보편적 형태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우선 양국이 유례없이 30여 년에 걸친 장기간 전쟁을 겪었을 뿐 아니라, 화친 수립 후에도 한 세기 가까이 고려가 몽골에 철저하게 복속하여 그들의 각종 지시사항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한 양국 왕실이 대대로 통혼관계를 맺어 고려국왕이 몽골황실의 부마(駙馬)가 되었고, 고려의 왕위계승자는 즉위 전 예외 없이 몽골에 질자(質子)로 파견되어 일정기간 카안의 케식[怯薛]에 복무했으며, 고려에 몽골의 지방행정 기관인 행성(行省)이 설치되고 고려국왕이 그 수장에 임명되었다. 아울러 고려가 수차례 몽골의 대내외 군사정벌 활동에 동원되었고, 공녀·환관·매를 포함한 각종 사람과 공물이 빈번하게 몽골에 진상되었다. 그런 점에서 양국 관계는 조공국의 정치적 독자성이 보장되었던 일반적 한중관계와 달리 고려가 몽골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강고하게 복속되었던 특별한 시기로 규정될 수 있다. 이 같은 양국 관계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이에 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양국 관계 연구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몽원사에 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양국 관계는 대체로 종주국으로 군림하던 몽골이 주도했던 만큼 이를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몽원사(蒙元史)에 관한 심도 있고 체계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로 국내 고려사 전공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해당 연구는 몽원사에 관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이 발생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양국 관계를 몽골의 압제·간섭에 대한 고려의 저항·극복으로 보는 단선적인 시각의 문제점이다. 이는 양국 화친 후 몽골이 고려에 대한 압제·간섭을 강화하는 가운데 고려의 국왕·신료가 이에 극력 저항하고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정치적 독자성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관점이다. 그러한 이분법적 관점에서는 어떠한 역사상이 무리하게 그 구도에 맞추어져 실제와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설명될 뿐 아니라 그 관점에서 벗어난 사안들이 연구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다른 사안들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개별 사안으로 다루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관점은 양국 관계를 실증적·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셋째, 한 세기에 걸친 양국의 화친관계 전체를 포괄하는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양국 관계 전체를 수렴하지 못하고 그 일부 모습이나 성격에 주목하여 그것을 포괄적인 구조의 단계로 무리하게 확대·적용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분석틀에 부합하지 않는 면모가 여전히 간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래 연구성과와 그 한계점을 염두에 두고 본서에서는 최대한 ‘몽골적’ 시각을 견지하는 가운데 주로 정치?외교사의 측면에서 양국 관계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저자는 연구의 독자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을 세워 그 바탕 위에서 논의를 전개했다. 첫째, 양국 관계에 관한 전반적인 사안을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대외정책과 연계하여 설명했다. 몽골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세계질서 아래 양국 관계의 형태와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세계관과 대외정책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양국 관계 연구에서는 그러한 몽골의 입장을 살피는 데 소홀했던 것 같다.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대외정책의 시각으로 양국 관계를 조망해야만 몽골의 대외관계 전반과 비교하여 그것이 갖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유효하게 포착할 수 있다. 둘째, 탈(脫)중국적 관점에서 쿠빌라이 개인과 그 정권.시대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고 이에 의거하여 양국 관계의 성립과정과 특징을 살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는 쿠빌라이를 한화(漢)된 인물, 그가 수립한 왕조를 정통 중국왕조[元朝]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때 수립된 양국 관계도 그가 중국적 대외정책 방식을 수용·적용하여 이루어진 책봉·조공관계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날 몽원사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결과 그가 한화되지 않았고, 원조가 정통 중국왕조가 아니라 몽골제국의 정체성을 계승한 국가라는 견해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적 외교관계의 인식 틀에서 벗어나 몽골의 대외관계 형성 방식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이 같은 양국관계의 특수한 면모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본서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몽골의 압제·간섭을 받는 가운데 고려의 국가적 실체와 위상이 줄곧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카안위 계승분쟁을 앞둔 일촉즉발의 시기에 성사된 쿠빌라이와 고려태자 왕전의 절묘한 만남과 쿠빌라이의 열악한 처지, 고려의 항쟁에 대한 몽골 지배층의 높은 평가로 말미암아 고려는 장기간 몽골의 침입과 복속요구에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선귀부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체·토풍과 국왕의 통치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후 다루가치 파견, 행성증치, 입성책동과 같은 외부의 ‘도전’이 수차례 발생했으나 고려는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국가적 자주성을 보전했다. 둘째,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대외정책 방식에 근거하여 양국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건국 초부터 몽골 지배층은 온 세상을 복속과 불복지역으로 양분하고 초유와 정벌을 통해 불복지역을 반드시 복속시킨다는 세계관과 대외정책 방침을 갖고 있었다. 고려도 그 적용대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따라 양국 관계는 시종일관 몽골의 고유한 대외관계 수립 방식에 근거하여 형성·유지되었다. 물론 고려의 능동적 대응이라든가 한법적(漢法的) 요소의 영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계수립의 주도권이 철저하게 몽골에게 있었던 만큼 그러한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셋째, 양국의 교섭과정에서 고려의 탁월한 외교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고려는 몽골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대내외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여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치·문화적 자주성을 수호했다. 그리고 보전한 국체·토풍을 바탕으로 14세기 중엽 공민왕의 반원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고려가 몽골의 압제·간섭 아래 정치·문화적 독자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탁월한 외교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거시적 시야에서 몽원사와 고려사 연구의 유기적 결합을 통한 심도 있는 양국관계사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서가 그러한 후속연구에 작은 길잡이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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